텀블러인쇄 대량 가능한 업체

기차역 대합실 풍경을 떠올려보자. 까치발을 세워가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. 잘 가라고 손 흔들고도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이도 있다. 그런데 마중하는 사람과 배웅하는 사람의 표정은 묘하게도 닮았다. 시인 박준(42)은 마음속 액자에 걸어둔 이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.‘마중은 기다림을 먼저 끝내기 위해 하는 것이고 배웅은 기다림을 이르게 시작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. 덕분에 우리가 마주하는 순간과 돌아서는 순간이 엇비슷해진다.’(산문 ‘생일과 기일이 너무 가깝다’에서)7년 만에 새 시집 ‘마중도 배웅도 없이’(창비)를 낸 박 시인을 14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만났다. 마중과 배웅에서 시인은 누굴 떠올렸을까. 어쩌면 수록 시 ‘블랙리스트’가 힌트가 될 것 같다.‘몇해 전 아버지는 자신의 장례에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할 지인의 목록을 미리 적어 나에게 건넨 일이 있었다. (…) 빈소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며 방명록을 쓰던 이들의 이름이 대부분 그 목록에 적혀 있었다’.실제로 아버지는 “생전 몇 명 이름을 얘기하며 ‘내 장례 때 부르지 말라’고 당부하신 적이 있다”고 한다. ‘이 사람들은 내가 죽었을 때 슬퍼할 것 같다’는 게 이유였다. “청승맞은 소리 마시라고 앞에선 타박했지만, 멋지단 생각도 들었다”고 시인은 회고했다.“타인의 감정을 먼저 한 번쯤 생각하는 게 시인의 태도랑 비슷한 것 같아서요. 내가 죽었을 때 무슨 생각으로 올까,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어떤 감정을 가질까 이게 연결되는 거 아니겠습니까.”말하자면 블랙리스트는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아버지 나름의 마중이자 배웅이었던 셈이다. 시인의 아버지는 지난해 봄 세상을 떠났다.“미리 생각해서 마중 나가고 혹은 가는 거 알면서도 조금 더 앉아서 배웅하고. 이게 가장 인간다운 시간이고, 인간다운 시간에서 인간다운 정서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.”평생 마중하고 배웅한 관계지만, 정작 영원한 이별 앞에선 마중도 배웅도 미진하다. 시집에는 그런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.“차마 얘기하지 못하는 더 많은 죽음들이 있어요. 욕심 같아선 한 권을 다 장례식으로 채우고 싶었어요. 검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, 전혀 마르지 않는. 근데 마지막에 이를 악물었어요. ‘이건 독자들에게 너무 폐가 되지 않을까’라는 생각이 들어서요.”어떤 뜨거운 재료도 읽는 이들을 위해 호호 불어 내놓자는 게 박 시인의 태도다.“시인이 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, 시는 샤우팅하지 않잖아요. 물론 나는 내적으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이지만 이 소리가 타인의 귀를 찌르지 않는다는 거죠. 내 목청을 뚫고 찌르고 나온 것이지만 타인을 훼손하거나 방해하지 않아요.”그런 그에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, 세상이 조금은 시의 화법을 닮아갔으면 싶다.“김치 먹을 때 ‘대 좋아해 이파리 좋아해?’ 이런 것은 정보의 대화가 아니라 정서의 대화죠. 상대가 대를 좋아한다고 미워하지 않죠. ‘난 이파리를 좋아하는데 저 별종은 왜 대를 지지할까’ 생각하지 않잖아요. 긍정적인 인간의 대화는 시에 가까워요. 만약 우리가 여전히 시를 읽어야 한다면 시의 화법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.”‘도인 같다’고 하자, 박 시인은 손사래를 치며 “나도 무슨 선비나 신선처럼 ‘허허’ 하는 정서의 대화만 하고 사는 건 아니다”고 했다.“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날 선 텀블러인쇄 대화, 정보의 대화가 오가는데 이런 완충이 있어야 다시 또 돌직구를 날릴 수 있죠. 상처가 그냥 사라지지는 않습니다.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요? 시간이 지나면 피멍이 들죠. 그냥 그 위로 다른 말들이 쌓여야 하는 것 같아요. 연고처럼.”

Leave a Reply

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. Required fields are marked *